남도분식 Namdo Bunsik









- SCALE
- 115㎡
- PURPOSE
- F&B
- SERVICES
- Space Design, Construction, Furniture Fabrication, Branding
- BUDGET RANGE
- KRW 120,000,000
"시간의 흔적은 비싸다. 값을 매겨보면 정말로 비싸다."
남도분식은 서촌에서 시작한 작은 분식집이다. 익선동 매장은 이 브랜드가 프랜차이즈로 처음 낸 플래그십 스토어다. 언더바는 폰트와 로고, 그래픽, 가구, 공간까지 브랜드의 모든 면을 설계했다.
가장 큰 변수는 건물이었다. 익선동 골목 안의 한옥 한 채. 지붕은 천막으로 덮인 채 비가 샜고, 바닥에는 흙탕물이 고였고, 벽은 녹물과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다. 새로 짓는 편이 빨라 재건축을 검토했지만, 리모델링과 재건축·대수선은 적용받는 법적 규제가 명백히 달랐다. 결국 고쳐 쓰기로 했다. 쓸 만한 것은 기둥과 보, 서까래로 짜인 목구조의 골격뿐이었다.
언더바는 시간의 흔적이 남은 것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오래됨은 다룰 줄 아는 재료였다. 문제는 붕괴였다. 모든 것을 새로 지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오래돼 보여야 했다. 디자인은 ‘시간의 흔적을 새로 만드는 일’에서 시작했다. 더군다나 위치가 익선동이었다. 쪽방으로 쓰이던 한옥 골목이 그대로 상권이 된 동네, 시간이 묻은 공간이 힘을 갖는 동네다. 더더욱 새것처럼 보여서는 안 됐다.
당시는 코리안 레트로가 한창이었다. 다만 그 시절 레트로는 대체로 과장된 어휘였다. 채도 높은 색, 노골적인 옛날 간판, 향수를 자극하는 소품의 나열. 과장된 디자인은 오래가지 못한다. 노포스러움과 촌스러움은 한 끗 차이다. 노포의 정서를 고급스럽게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
테이블이 그 판단을 보여준다. 마름모로 짠 상판 패턴은 80년대 주택의 나무 천장에서 가져왔다. 천장에서 타일을 떼어다 붙인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명백히 새로 만든 물건이었지만. 천장은 새 목구조에 옛 골격을 더해 노출로 마감하고, 벽은 미색으로 가라앉혔다. 의자는 예식장에서 쓰던 스타킹 체어다. 바닥은 테라조, 소위 도끼다시. 오래돼 보이지만 콘크리트부터 새로 붓고 표면을 갈아 만들었다. 옛날 분식집의 어휘를 쓰되 비율과 마감을 조였다. 촌스러움의 경계에서 멈추는 것이 기준이었다.
그래픽도 같은 원칙으로 갔다. 일출과 일몰을 그린 듯한 박스 간판, 세 개의 둥근 얼굴 로고, ‘남도의 이름난 분식만 고르고 모았읍니다’라는 캐치프라이즈. 폰트는 직접 그렸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도 기하학적인 폰트를 거뜬히 만들던 간판 예술가들의 손맛이 나길 바랐다. 파사드에는 옛 노포가 쓰던 알루미늄 패널을 썼다. 요즘은 쓰는 곳이 드물고 금속값이 올라 목공보다 비쌌다. 모든 가게가 레트로 요소를 하나씩 품은 익선동에서, 시끄럽지 않게 눈에 띄어야 했다.
남도분식은 오픈하자마자 웨이팅이 걸렸다. 첫 달 매출은 2억 원을 넘겼고, 꽤 오랫동안 월 1억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안다. 분식으로 낼 수 있는 매출치고는 경이로운 숫자였다.
시간의 흔적은 비싸다. 값을 매겨보면 정말로 비싸다. ‘원래 있던 분식집을 고쳐 만든 곳’처럼 보이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거저 얻는 오래된 흔적이 얼마나 저평가된 아름다움인지 생각하게 된다. 시간의 흔적은 오리지날이라서 그렇다. 수십 년을 버틴 떡볶이집의 오리지날리티를 프랜차이즈가 표현할 수 있다면 그만큼 힘이 센 브랜딩은 없다고 생각했다. 기획과 예상은 꽤 잘 맞았고, 매출이 이를 증명했다.